Freindƨ in the living room, GAM
프린즈 인 더 리빙룸, 경남도립미술관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Animal Farm)에 등장하는 ‘freind(프린드)’ 개념을 바탕으로 전개된 설치는 동시대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친구와 우정, 협업과 공존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소설 속에서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배울 때, 영어 단어 friend의 i와 e의 자리가 바뀌게 쓰고, 동물농장 7계명(The Seven Commandments) 중 어떤 s자 하나를 거꾸로 뒤집어쓴(reversed s) 실수와 관련한 에피소드로부터 착안해 복잡한 관계망과 미디어의 영향 아래 변화하는 우정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Can’t Take My Eyes Off You〉는 광섬유로 된 영상 설치 작품이다. 광섬유를 통해 빛이 투과되는 원리를 이용해 비디오 모자이크 영상이 반대편 광섬유 단면에 맺히도록 고안했다. Can’t Take My Eyes Off You 글자 조각은 수많은 점(dot)으로 구멍이 뚫렸고, 광섬유 한 가닥씩 가느다란 구멍과 연결되어 있다. 영상이 프로젝션 되면, 점들은 글자 조각 표면에 픽셀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쌍으로 제작된 〈You We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키네틱 라이트 설치는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에 관한 것이다. 무대에서 각각의 라이트 오브젝트는 텍스트와 사운드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래된 팝송 두 곡은 유튜브의 사용자들이 올린 여러 샘플들을 리믹스하여 실시간 제너레이티브 사운드를 재생한다. 이 사운드의 데이터 값에 반응하는 라이트가 공간을 채우며 반짝인다. 여기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이중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빛과 어둠이 대변하는 것의 양면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환기시킨다. DIY 재료들과 함께 변형된 장식품과 후기 산업화 시대가 낳은 대량생산품은 예술작품이 되고 건축과 디자인의 경계 사이에서 또 다른 설치로 거듭난다.
‘친구들이 있는 거실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딜레마를 내포하며 사적인 관계의 차원을 벗어나 소셜 미디어와 개인, 거대 기업과 클라이언트, 혹은 네트워크와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떠올리는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허구적 상황과 실제가 겹치는 장소로서의 ‘거실’은 안락함과 프라이버시를 의미하는 공간을 전복시킨다. 사적 영역이 공공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폐쇄적인 한편 네트워크로 침투 가능한 전략적으로 열린 건축적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익명의 관람자들은 ‘친구’의 이름으로 등장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참여자가 되어 설치 공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즉, 거실에 있는 친구들의 모습은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 끊임없이 지켜보고 평가해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 2012년 조명박물관 전시 소개글
〈Freindƨ in the living room〉(프린즈 인 더 리빙룸)은 2012년 이후 진행해 온 〈Living room〉(거실) 프로젝트의 연작으로 2016년 경남도립미술관의 《you, the living》(유, 더 리빙) 기획전에서는 과거에 제작했던 여러 설치의 부분들과 조합들로 재구성된다. 알파벳으로 된 LED 글자 조형물 〈Freindship is universal〉(우정은 보편적/우주적이다) 설치가 전시 공간의 벽을 따라 배치되고 거실이란 연극적 무대의 배경이 된다.
할로겐램프가 장착된 〈Bury your head in the sand like an ostrich〉(눈 가리고 아웅) 조명 스탠드 작업은 RGB 값으로 반짝이며 무대를 구성하는 보조적 위치에 자리한다. 광학, 의료 등 산업 분야와 사진, 영화, 전시 등 예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온 반사경 타입 할로겐램프는 공연장이나 연극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에 적합한 용도로 때로는 무대의 다운 라이트로, 또 때로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상황에 따라 창의적인 조명 연출이 가능하다. 빛의 삼원색을 섞은 아름다운 광채가 설치 공간에 연극성을 더한다.
전면에 20미터가 넘는 〈Freindship is universal〉의 LED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Bury your head in the sand like an ostrich〉의 R(빨간색), G(녹색), B(파란색) 컬러 할로겐램프들이 발광하면 이제 막(act)이 시작되는 셈이다. 관객은 스포트라이트가 뿜어내는 빛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변화하는 조명 효과 때문에 정확히 사물을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작품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는 속담에서 빌려온 것으로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 훤히 다 알아차릴 수 있는데도 얕은 술수를 쓰는 경우’를 빗대어 표현한다. 주변 환경과 반응하는 라이트 아트는 열린 무대 공간으로 들어온 관객의 개입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독자(관람자)를 소환하는 장치가 된다.
중앙에는 낮은 높이의 원형 좌대 위 TV 모니터를 비롯한 소파, 테이블, 카펫 등으로 거실 공간이 꾸며진다. 입구 쪽에 놓인 임시 벽(가벽)은 사선으로 약간 기울어져 반쯤 열린 문처럼 서 있고, 라이브로 송출되는 내부 공간이 임시 벽 전체에 프로젝션 된다. 비스듬히 서 있는 임시 벽은 공간을 구획하는 스크린이자 문이 된다. 뒤편은 전시장 안, 즉 설치 공간의 내부이다. 관객은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 외부에서 내부의 장면을 볼 수 있고, 거실–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목격하게 된다.
모두 24개의 거울–유리 위에 펠트로 조각된 텍스트들이 부착된 〈Hanging on your every word〉(너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여/너의 모든 약속을 매달며)는 부조–아상블라주이다. 평면에 돌출적인 오브제, 즉 3차원 요소를 가미하여 입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거울이 공간 전체를 비추면서 2차원에서 탈피해 더 확장된 공간과 다차원적 공간감을 드러내는 예술적 형식을 보여준다. 이 거울 연작들과 쌍을 이루는 〈Hanging on your every word〉 키네틱 조명 스탠드에도 거울 표면의 그것과 같이, 펠트로 조각된 텍스트들이 원형의 전등갓을 두르고 있다. 조명이 켜지고 스탠드 모터가 회전하면 전등갓에 매달린 ‘word’(말/약속)들은 거리에 따라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벽면에 텍스트 그림자를 드리운다.
TV, 소파, 테이블, 카펫 등의 가구, 거울, 액자, 조명, 소품 등으로 채워진 세트가 대략 완성되고, 이제 이 가공의 ‘리빙 룸’은 관객을 기다린다. 내부로 들어온 관객은 단순히 방문객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가변적인 거리와 시간을 통해 늘 변화하는 관점과 위치의 이동이 만들어 내는 면면들을 살펴보는 인물, 또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움직인다. (살아 있는) 거실이란 장소와 (아직 정의되지 않은) 친구(캐릭터)가 등장하는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캡처되고,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와 프로젝션 스크린 위로 계속 스위치 되는 짧은 순간이 지나간다. 우리 스스로 위치를 찾고, 다른 관점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행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거실을 비추는 장면은 언제나 라이브로 전달된다.
- 2016년 경남도립미술관 you, the living 전시를 위한 작가노트
Freindƨ in the living room – 칭구들과 함께한 리빙룸에서
우리는 여전히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우화 《동물농장》(Animal Farm)에 등장하는 ‘freindƨ’(i와 e의 순서가 바뀌고 거꾸로 된 s로 쓰인 friends) 개념이 유효한 지점에서 친구와 우정, 협업과 공존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연극적 무대나 스튜디오에 가까운 공간에서 거실은 늘 움직인다(living). 여러 형태의 조명들과 오브제, 실시간 스위치 되는 영상은 변화하는 위치와 장면 전환을 만든다.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선언적인 텍스트–메시지(friendship is universal)는 정해지지 않은 조건들, 즉 가변적인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로 해석된다. ‘친구들이 있는 거실’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딜레마를 내포하며 사적인 관계의 차원을 벗어나 소셜 미디어와 개인, 거대 기업과 클라이언트, 혹은 네트워크와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떠올리는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허구적 상황과 실제가 겹치는 장소로서의 ‘거실’은 안락함과 프라이버시를 의미하는 공간을 전복시킨다. 사적 영역이 공공 영역(독일어: Öffentlichkeit, 영어: Public Sphere)으로 확대되면서, 폐쇄적인 한편 네트워크로 침투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열린 건축적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익명의 관객들은 일종의 ‘끼어듦’을 선택함으로써 ‘프렌즈/프린즈’(friends/freindƨ)로 등장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참여자가 되어 설치 공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거실에 있는 친구들의 모습은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관찰하고 평가해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이 설치의 공간을 채우는 중심은 단순히 전시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의 형태나 배열, 혹은 주요 부분을 완성하는 관객의 역할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자기에게 몰두한 상태(self-absorption)에서 일어나는 허구적 이미지의 반영(reflection)을 목격함으로써 ‘우정’이란 개념을 테스트하고 상품화하는 파편화된 시간과 조각난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들이다.
- 2012년 조명박물관 Freindƨ in the living room 전시 소개글을 바탕으로 일부 수정, 2016년 3월 설치를 마친 후 오프닝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