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phant in the living room
거실의 코끼리논쟁적인 이슈나 문제점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무시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이디엄은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다. 방안의 사람들이 코끼리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은 어떤 문제에 대한 집단 부정(collective denial)을 내포한다.
정보의 시대에 우리는 방대하고도 다양한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본질적인 맥락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방안의 변화하는 이미지들과 그런 이미지의 대상 자체인 코끼리는 은유(metaphor)로 사용되어 일종의 서투른 재담을 만들어 낸다. 거실의 코끼리(삼라만상에서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파편들)는 우리가 종종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해 온 문제들이 피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첫 단계 그림이다. 이것은 또한 소셜 미디어 시대에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이미지의 의미를 반영하는 독특한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매일 사용하는 집안의 공간으로 정의되는 거실은 이미지의 장소, 행위의 무대, 반전의 공간이며, 동시에 영화와 연극의 공간, 삶이라는 무대, 그리고 미디어라는 거울이 비추는 곳이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온 사이비(pseudo) 거실에서 코끼리 “상(象)” 글자 조각의 수천 개 구멍에 연결된 광섬유 다발은 프로젝션 되는 모자이크 영상을 텍스트 메시지로 전달(image-to-text)하며, 부분 픽셀 이미지로 빛을 발산한다. 모조품 가구, 살림, 집기, 조명과 TV 모니터로 꾸며진 설치에서 토론의 역사에 등장하는 주요 소품들은 변형되어 재구성된다.
누구라도 소파 위에 앉으면 미디어에 노출된 (다소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퍼블릭 토론에서 드러나는 형식을 관조하는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관객은 대표자 자격으로 토론이나 대화에 참여하는 인물이거나 아니기도 하다. 동시에 관객은 타자뿐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관찰한다. 이런 의식은 끝없이 펼쳐지며 무한히 반복되는 어떤 목적성 없는 방향,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단일 경계의 연속성처럼 – 마치 뫼비우스 띠같이 – 영원히 쳇바퀴를 도는 듯한, 달리 말하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거실에 대한 성격을 끊임없이 재조명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이중성의 공간을 재현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이중성을 표현하는 설치 공간이야말로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양면성을 가장 잘, 그것도 모순된 개념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개인과 커뮤니티의 가치가 공유되는 지점들을 연결한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스토리텔링은 코끼리 이미지 전체를 차지한다.
The idiom “elephant in the room”, which indicates a situation where questions and discussions about controversial issues or problems are ignored or unaddressed, can be linked to the story about “blind men and an elephant.” The situation in which people within a room cannot figure out the nature of the elephant implies a collective denial of an issue.
In this age of information, we can access a vast sea of data and networks, but at the same time, we are faced with limitations. In this project, the changing images in the room and the image of an elephant itself are used metaphorically and they create a sort of awkward joke. Accordingly, the elephant in the living room (fragments which are a mere part of a whole) is the first step picture, acknowledging the fact that we often deliberately avoid and ignore problems. This also represents a specular idiosyncrasy, which reflects all the images we consume in the era of social media.
A living room is defined as a room in a house that is used on a daily basis. It is a venue of images, a stage for actions, and a space of reversals. It is also a venue of movies and plays, a stage of life, and a space where the media as a mirror reflects. In this pseudo-living room, the obvious idea of image-to-text is represented as the video mosaics are projected on the surface where thousands of tiny holes are connected to the “elephant” letter sculpture with those thin fibers, which looks like a sparkling pixel movie from distance. In the installation of reproduced furniture, which is imitation, along with household items, appliances, lighting, and TV monitor, the main props appear in the scene of famous debates are modified and recomposed.
If anyone sits on the sofa, he or she can be audience and observe the patterns disclosed during a public debate (somewhat political and educational) through media. Viewers can either become people who actively participate in a discussion or remain as spectators. At the same time, spectators observe themselves and others. Such awareness creates a situation akin to standing in a cul-de-sac, or on an endlessly turning tread wheel – like a Möbius strip, which has one continuous boundary and non-orientable surface, repeating itself limitlessly in no specific direction.
Reviewing the living room, we became aware that reproducing such a dual space was absurd. Despite all that, the installation venue, which expresses such duality, is the method that can best deliver the duality of our questions, and with the concept of contradiction. As we wish that someone would listen to the stories, which connect points that share the value of community, our storytelling comprises the entire image of an eleph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