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AVS 작품설명]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기록과 기억 게임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기록과 기억 게임

방앤리 x 박종길 

세 번의 내일, 그리고 세 번의 전시

방앤리 듀오와 박종길 박사가 함께한 전시는 이번이 세 번째다. AVS 2022-23 《내추럴 레플리카Natural Replica(김희수아트센터, 2023)》와 《어둠 속의 예언자The Prophet in the Darkness(토탈미술관, 2023)》 개인전에 이어, 이번 AVS 2023-24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수림큐브, 2024)》 전시에서 그간의 여정을 담은 작품 연작을 모두 전시한다. 

방앤리는 박종길 박사와 협업의 과정에서 인공뇌융합 연구 분야의 현재로부터 곧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직면할 상황을 그려보고, 인공지능 기술이 재창조하는 시공간의 새로운 개념을 탐구해 왔다. 박종길 박사는 뉴로모픽 공학Neuromorphic Engineering자가학습 인공지능 반도체를 연구하고 있다. ‘’를 ‘모사’한다는 뜻의 뉴로모픽은 초저전력으로 동작하는 인간 뇌의 주요 기능을 모방해 기존 폰 노이만 아키텍처 컴퓨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이다.

미디어 비평적 시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과학기술이 편재한 사회에 관한 통찰력 있는 작품을 발표해 온 방앤리는 박종길 박사와 협업하여 미래 사회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린다. 인간과 같은 사고력과 감각을 지닌 고성능 저전력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를 관통하는 오래된 목표와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 기술의 현재를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동시에 디지털 휴먼으로 제작된 ‘AI 예언자 청문회’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의 영향, 과학기술 윤리와 딜레마,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기술의 쓰임과 파급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곧 도래할 자율주행 시대를 예비하는 촘촘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다. 

두 개의 빛

전작 〈아이샤인Eyeshine〉은 전체 스토리의 서막을 알리는 일종의 프리퀄로써 주인공 AI 예언자AI 에이전트가 가상의 복고풍 거실에서 만나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로 구성되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대화는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이 장착된 자율주행차가 어떤 오브젝트(사물, 동물, 사람 등)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사고를 일으킨 상황을 암시한다. ‘두 개의 빛/눈’으로 표현된 그 오브젝트/장애물은 미래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동물이다. 제한된 학습으로 해당 동물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AI 예언자는 사물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기에 우발적 사고accident, 즉 사건incident으로 이어진 경위를 담담한 어조로 진술한다. 

AI 에이전트는 초당 10,000프레임(fps) 이상의 장면을 구현하는 기술의 정확성과 판단에 오류나 실수가 없었는지 이벤트 카메라Event Camera가 담은 화면을 검증하는 조사가 곧 이루어질 것을 알려준다. 찰나의 순간, 인공지능의 의사결정과 판단은 소량의 빛의 패턴으로 화면에 스쳐 지나가지만 보이지 않는 ‘눈 너머의 눈’이 시사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인공지능들이 주최하는 청문회

이어,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AI 예언자 청문회The Hearing on AI Prophet〉에서는 3D 디지털 휴먼으로 형상화된 AI 예언자, AI 의장, AI 에이전트가 미래의 (가상의) 청문회장에 등장해 AI의 예측 오류와 실수의 가능성,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공정성, 투명성, 신뢰성에 대한 질의와 답변을 주고받는다. 중요한 점은 인공지능에 대한 청문회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스스로 주재하는 청문회이며, 청문의 대상이 바로 완벽한 인공지능 예측 시스템AI 예언자라는 데 있다.

방앤리의 작품에서 인간 이외의 포스트휴먼의 존재는 바로 뉴로모픽과 같은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로 작동하는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방앤리가 시각화하는 포스트휴머니즘 세계는 뉴로모픽 칩을 장착한 AI 예언자 시스템이 탑재된 완전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된 미래 사회의 풍경을 그린다. 이곳에서 AI는 인간을 보조하는 도구적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 즉 전자인격Electronic Person으로 존중받는다. 인간을 대신해 모든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AI 예언자는 완벽한 예측 능력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자율주행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두고 AI 예언자의 예측이 실패한 상황인지를 검증하는 청문회가 소집되면서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위협받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는 AI 예언자 청문회에서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관객의 끼어듦을 유도함으로써 또 다른 ‘사고 실험Gedankenexperiment’으로 이어진다. AI 예언자, AI 의장, AI 에이전트는 각자의 위치에서 인공지능의 딜레마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인간이 만든 로봇과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획득할 때 발생하는 신뢰와 윤리 문제 등 여러 부정적 가능성과 위험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초지능 AI 예언자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인식되는 인지, 추론, 추상적 사고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판단력과 감각, 창의력을 지녔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은 인간-비인간, 자연-인공, 생명-기계, 정신-물질, 나아가 비인간-비인간에 대한 관계에서 인간 인식의 산물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흐릿한 경계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촉발한다.

두 개의 공간, 기록과 기억

방앤리는 ‘내일, 또 내일, 또 내일’로 시작하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  5막 5장의 문구에 등장하는 어절과 그 연결성을 바탕으로 전시 공간 연출을 위한 개념을 잡고 작품 배치 계획을 세웠다.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1
기록된 시간
의 마지막 한 음절까지,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지난날 (…)

우측 전시장은 ‘우리의 모든 지난날All our yesterdays’로 〈아이샤인Eyeshine〉과 〈AI 예언자 청문회The Hearing on the AI Prophet〉 2편의 멀티채널 3D 애니메이션 스크리닝을 위한 실험 극장 형태이다. 은밀한 거실과 가상의 복고풍 청문회 공간은 현실 세계의 전시 공간으로 확장된다. 앤틱 의자와 테이블, 조명, 소품, 그리고 영상 작품의 배경에 등장하는 유화 작품이 실제 전시장에 걸려 있다. 텅 빈 국도를 드론으로 촬영한 듯한 풍경 〈플레즌트 밸리Pleasant Valley〉와 그 한적한 도로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낙타 조형물 〈사라Sara〉를 그린 그림이 벽을 대고 마주한다. 스냅샷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를 보고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카메라 렌즈에 담긴 기록은 마치 기억처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좌측 전시장은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음절)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으로 공간을 둘러보며 체험하는 장소이다. 〈사건의 재구성The Reconstruction of the Incident〉은 AI 예언자가 이벤트 발생 시점, 즉 지난 사건이 발생한 과거 기록/기억으로 되돌아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인공지능의 시각에서) 복기하며 일종의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기법으로 기억 소환recall memories을 통해 스스로 검증하는 장면을 재현한다. 

인공지능의 스파이크가 발생하고 ‘기억 게임’이 작동하던 순간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의 관점으로 제시된 시공간적 정보를 호출하는 순간이며 AI 예언자 청문회 이전이나 이후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전후 사건의 순서나 정황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지만,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객의 접근과 시각에 따라 각자 다르게 판단/해석하는 사건은 실시간 재구성된다. 두 개로 나누어진 공간은 두 개의 세계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스토리의 퍼즐처럼 맞물려 있다. 무엇을 먼저 보던 우리는 연속성에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기억의 재구성

내용에 있어서는 개브리얼 제빈의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에 등장하는 문구에서 두 단어(우연과 결정happenstance and decision)를 발췌해 1층 양쪽으로 분리된 두 전시 공간의 연결과 동선을 고려했다.

Memory, you realized long ago, is a game that a healthy-brained person can play all the time, and the game of memory is won or lost on one criterion: Do you leave the formation of memories to happenstance, or do you decide to remember?2
기억
은, 네가 오래전에 깨달았다시피, 건강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 기억 게임은 단 하나의 기준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 기억의 구성을 우연에 맡기느냐 아니면 기억해 내기로 결심하느냐.3

사건의 재구성은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기억의 재구성이다. AI 예언자는 과거의 사건incident, 즉 이벤트 기록Event Record을 되돌아보고 인공지능의 ‘눈’으로 지난 기억을 재구성한다. 인공지능 카메라의 기록은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장면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인지하지 못하는 시공간의 사건(accident, incident, event 두 가지 이상의 뜻을 지닌 중의적인 표현)을 ‘자연’의 방식으로 재현해 내는 해당 기술은 우리의 눈이 놓친 것을 재생해 과거의 시간, 즉 ‘기록된 현재’를 보여주는 혁신적 비전이다. 그 때문에 작품에서는 이벤트 카메라의 눈으로 본 시공간적 정보들을 인간이 알아볼 수 있도록 순간(음절)syllable기록record, 시간time의 관계를 탐구하며 데이터 분석과 미래 예측에 필요한 요소로 대입해 스트로브 라이트strobe light로 연출한다. 이것은 AI 예언자가 본 이벤트 기반 시공간적 정보인간의 시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연출한 효과이다. 

스트로브 효과Stroboscopic effect는 우리의 뇌가 연속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발생한다. 카메라 플래시 효과처럼 섬광(번쩍임)은 시간의 연속성에서 순간 정지된 것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결국 사건의 재구성은 인간의 시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인공지능이 수집한 최후의 데이터 기록, 이벤트/스파이크 순간을 시각화한 디지털 포렌식 미니어처와 같다. 이 연극적 셋업은 완벽한 오토파일럿 기술이 장착된 자율주행차와 뉴로모픽에서 다루는 스파이킹 신경망Spiking Neural Networks, SNN이벤트 카메라Event Camera 장치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한다. 스파이킹 신경망 원리로 작동하는 대표적인 장치인 이벤트 카메라의 동작 원리와 애플리케이션을 해석하여 컴퓨터 비전이 본 ‘이벤트event’를 하나의 ‘장면scene’으로 압축해 시각화한다. 

우연과 결정의 순간(음절)들

방앤리의 작품은 뉴로모픽 공학의 핵심 등 과거의 예술가들이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와 개념을 탐구함으로써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변화를 상상하며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기술에 의존하는 것의 한계와 잠재적 위험성, 인공지능의 딜레마와 윤리 문제가 포괄적인 관점으로 제시되는 작품의 주제는 인공지능의 법적, 윤리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자율주행과 같은 현실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아울러 과학기술의 혁신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법적 제도와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 이러한 변화가 불러올 영향에 대한 공동체적 질문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방앤리 듀오와 박종길 박사의 만남은 우연에 의한 사건이었지만,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기억의 재구성은 기억의 형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떤 끼어듦이나 ,(쉼표) and(그리고) 사이 우연happenstance결정decision순간들이다. AI 예언자의 예측과 판단이 내려진 순간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기억이 소환되는 자리에서, 그리고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우연과 결정 사이에 놓인 시간은 지속된다. 그것은 또한, 세 번의 전시를 맞이한 예술가와 과학자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연결에서 스파이크가 발생하는 순간이며 또 다른 내일, 멈추기 전에 무한히 반복되는 게임의 가능성,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인 것이다.


  1. William Shakespeare, Macbeth, Act 5, Scene 5 https://www.folger.edu/explore/shakespeares-works/macbeth/read/5/5/
  2. Gabrielle Zevin,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New York: Alfred A. Knopf, 2022), 286.
  3. 개브리얼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2023, 457쪽.

  • 아이샤인Eyeshine(2023)은 수림문화재단 AVS 2022-23 《내추럴 레플리카Natural Replica(김희수아트센터, 2023)》 전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AI 예언자 청문회The Hearing on AI Prophet(2023), 사건의 재구성The Reconstruction of the Incident(2023), 플레즌트 밸리Pleasant Valley(2023), 사라Sara(2023)는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로스트 인 메타버스Lost in Metaverse(2023)는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사건의 재구성The Reconstruction of the Incident(2023, 2024)은 기존 작품의 재제작과 신작을 추가한 연작으로 수림문화재단 AVS 2023-24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수림큐브, 2024)》 전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설명은 방앤리 스튜디오에서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