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대한 짧은 필름처럼(Like A Short Film About Friendship)

넌제로섬을 향해…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탔다.”

이보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은 없을 것 같다. 명백하고 냉정한 상황.

원래 게임이론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 즉 협업이 “넌제로섬(nonzerosum)”이라는 용어의 정의에서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의 “넌제로(Nonzero)”라는 책에는 이러한 부분이 잘 설명되어 있는데 역사의 방향과 목적성이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 다가올 전시에서 이 모든 부분을 해석한 내용을 담을 수는 없지만, 인류 역사의 방향성이 복잡한 상관관계에서 넌제로섬 솔루션을 추구해왔으며, 제로섬 원리의 반대급부로 작용한 넌제로섬 원리에 의해 사회 진화와 발전, 다수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협력과 통합이 전개되어 온 부분, 즉 넌제로섬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협업(collaboration)”에 대한 주제를 재해석하여 여러 퍼스펙티브를 가진 설치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이미지와 소리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수많은 이미지와 소리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동시에, 이미 생산된 이미지와 소리가 변형, 가변, 재생산, 혹은 다른 맥락과 차원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거나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특히, 뉴미디어와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설치 작업에서 새로운 매체라는 재료에 대한 해석은 그 재료가 포함하는 내용을 담기 마련이다.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진보하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협업은 삶과 소통의 방식, 또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경이로운 면모 이면의 부정적 측면, 또 이로 말미암은 역설적인 상황과 딜레마 등에 대한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몇 년간 소통과 인터랙션을 위한 참여적 미디어 설치, 퍼포먼스를 동반한 사운드 아트,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들을 실험해 오면서 지역 미술관, 인터넷 사용자,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우연적인 결과를 주목해 왔다. 이는 인터랙티브 설치의 한계, 즉 반응적인 피드백으로써 이미 사전에 프로그래밍이 된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일시적 참여는 있으나 지속적인 인터랙션의 불가능, 작품-작가-관람객 사이의 소통이 결핍된 미완성의 작업들을 넘어서는 시도였다. 반응적인 환경(responsive environment)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를 실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관람객과 소통 가능한 공간을 열어두는 것은 인터랙션이 이루어지는 작업의 주요 부분일 것이다.

그간 협업을 바탕으로 지속해 온 프로젝트에서 가능성을 찾는 이유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시네마의 가능성을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회에 대한 크리틱이자 패러디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해 설치에 적용한 것은 단지 스타일과 내용에 대한 은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단순한 모방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부분, 그것이 과장과 더불어 삶의 또 다른 형태를 여과 없이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집단지성과 소셜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구조에서 창의적인 생산물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생산되는 데이터 마이닝 프로세스는 협업과 협력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또한, 기술에 의존적인 미디어 아트 부분에서도 이러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그물망처럼 형성되어 있다. 전시를 위한 설치는 이러한 주제를 담은 네러티브 구조를 띠고 있으며, 개별적인 설치물들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이는 관람자 혹은 참여자에 의해 가변적 설치로 확대되어 상대적 시간성과 다층적인 퍼스펙티브를 가진 프로젝트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우정에 대한 몇몇 에피소드…

전시는 협업, 혹은 협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잠재성, 우발성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설치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소품들이 흩어져 있는 것 같은 영화 세트장의 한 장면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개별적인 공간들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분리된 장소로 귀결된다. 공간과 인터랙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또 협력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작업의 형태는 변형될 수 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는 누구나 넌제로섬 게임의 플레이어(player)가 되어 포지티브 섬(positive sum), 혹은 네거티브 섬(negative sum)이 발생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도록 각각의 설치물들은 전시 공간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공동작업과 협업의 중요성,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산성이 가지는 의미를 반추하며 예술 프로젝트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란 개념의 연장선에 있는 맥락들을 강조하는 작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설치의 형태나 구조에서 뉴미디어 기술의 팽창과 신자본주의의 몰락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적 쟁점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일 수록 유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앞서 프로젝트와 연계한 설치 프로젝트의 확장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 프로젝트 실현에서 협업과 소통의 문제, 상업성 및 광고성 등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작업 결과물의 관계, 소유권 및 지적재산권 등의 이슈를 조명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설치에 반영할 계획이다. 특히 관람자와 참여자 스스로 인식이 가능하도록 다차원적 해석이 가능한 설치를 실현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참여적 미디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011년 12월, <넌제로섬 사회> 전시에 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