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space)
esc(space)esc(space)는 조명박물관이 주관하는 특별전의 일환으로 방앤리 작가와의 장기적인 협력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기획되었다. 연극적인 무대와 실험적인 라이트 아트 설치의 범위를 확대하는 시도는 전시 공간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키고 무대와 작품, 관람객과의 거리를 가변적으로 만든다. ‘탈출’과 ‘공간’이라는 큰 주제 안에 여러 오브제와 설치 작품이 연결되어 있어 관람자 나름의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조명박물관의 특별전 ‘ecape(space)’는 탈출, 도피의 뜻을 지닌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어떤 상황에 관한 판단 정지 후 재시작을 위해 다른 곳이나 차원으로 이동하는 출구의 뜻을 함축한다. 컴퓨터 자판의 ‘esc’ 키는 밖으로 나가는 기능으로 프로그램의 진행을 멈추는 데 사용된다. 화면의 창을 사라지게 하거나 사용 중인 컴퓨터의 작동 상태를 전환할 때 사용하는 이러한 기능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실행 중인 프로세스를 정지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특정한 공간에서의 ‘탈출’은 ‘내보내기’와 ‘불러오기’를 지칭하는 장소로 전환되며 괄호 안에 포함된 ‘공간’을 재정의하게 된다.
예술과 기술의 통섭, 디지털과 정보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 내용이 담긴 프로덕션에서 공간 설치의 자유로움은 언제나 괄호 안에 묶여 있다. 독일의 사회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근원적으로 사물을 달리 보지 않을 때 사회 정의(social justice)는 실현될 수 없으며 기술이성주의 사회의 관점에서 급진적인 사회 변화는 ‘escapism’으로 가능하다는 관점을 제시했는데 이러한 측면이 escape(space)의 프로덕션의 주제에 일부 포함되어 있다.
전복적인 행위, 탈주 가능한 공간에서 본질적인 혁신과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제적 측면은 괄호 안에 묶인 공간을 창의적 프로덕션을 위한 잠재적 프로젝트 스페이스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부합한다. 아직 정의되지 않은 전시 공간을 연극적 공간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은 테크놀로지 중심 혹은 기술기반 예술 프로덕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escape(space)는 어떤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바탕으로 특정한 계층의 관람자나 정형화된 장소를 위한 예술 프로덕션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설치가 놓인 장소 즉, 전시 공간 자체가 해석적인 무대로 관람객에게 읽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