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hip is Universal Exhibition Guide
Exhibition Materials
2014. 4. 1
황대원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미디어아트라 하는 동시대적인 작업을 접할 때, 관객들은 그 외관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다. 기존의 장르에 구애 되지 않는 실험적인 형식과 자못 복잡하게 보이는 기계 장치, 혹은 이들이 낳는 시각적 효과는 마치 신기한 테마파크에 온 것처럼 우리의 감각을 즐겁게 자극한다. 그러나 미디어아트가 지하의 어두운 클럽이나 축제의 밤하늘을 수놓는 레이저 쇼와 달리 예술인 이유는 그것의 비감각적인 또 다른 측면, 즉 사유 때문이다. 이는 이번 방앤리 개인전, Friendship is Universal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다. 테마파크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 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쳐다보고만 왔다면, 꼭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너무 많은 부분을 놓친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도 그 재미를 깊이 맛보려면, 관객들은 작가가 장치해 놓은 갖가지 관념에 탑승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이 텍스트는 그것을 돕기 위한 간단한 관람 안내서다.
우정(Friendship)이란 무엇일까? 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그것도 주로 훈훈한 의미가 떠오르는 단어지만, 이런 개념일수록 그 뱃속에는 심오한 역설을 간직하게 마련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정’은 아주 넓고 다양한 메시지가 의미심장하게 교차하는 기표다. 출품작 중 하나이자 전시 제목이기도 한 Friendship is Universal은 1980년대 미드 브이(V)에서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이 붙이던 포스터에 적힌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진정 우정 이란 종족뿐 아니라 행성까지 초월하는 우주적 가치인 것 같지 않은가? 다만 그 속에는 당신을 냉동실에 꽁꽁 얼렸다가 잡아먹으려는 검은 흉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러니한 공간을 벌려 놓고, 방앤리는 우정을 동시에 여러 차원에서 논한다. 그것은 정치적 수사법이나 미술계에 대한 비평일 수도 있으며, 미디어 기술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작가들 스스로가 겪은 일들에 대한 암호일 수도 있다.
우정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장벽을 마치 마술처럼 뛰어넘으려 하는 예외적 법칙이다. 그리고 물론 그 안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복잡하게 공존할 것이다. Friendship is Universal은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징적 장면들을 모으고, 거기서 떠오른 심상을 미디어아트 작업을 통해 한 편의 시처럼 엮는다. 이 시는 목가적 서정시가 아니라, 온갖 장면이 교차하며 빛과 어둠이 바뀌고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같은 전위적 상상에 더 가깝다. 다만 관객이 이런 상상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정교한 외양에 깃든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하의 글은 그걸 위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1.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벽에 걸린 The escape artist는 1900년대 초에 활동한 전설적인 탈출 마술사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 1874-1926)의 모습을 그리는 작업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구속하는 수갑과 쇠사슬, 자물쇠 등을 풀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탈출 묘기의 선구자 격인 인물이다. 이 작업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바뀌는 입체 구조로 되어 있다. The escape artist 앞에서 걸음을 좌우로 옮기면, 후디니를 묶는 사슬이 풀렸다가 묶였다가 하는 것이 보인다. 그의 인생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느 쇼에서 멋지게 탈출했는가 싶었더니, 다음 공연에서 또 묶여 있어야 한다. 다시 이것이 이번 전시의 제목에 담긴 패러디와 함께 우정에 대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즉, 우정은 당신을 해방시켜 주기도 하고, 반대로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며, 그와 같이 반복된다.
2.
1층의 다른 두 작업은 오늘날의 인간관계에 대한 비평이다. Bury your head in the sand like an ostrich는 여러 개의 조명으로 이뤄진 작업인데, 이는 무대를 향하는 대신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쏘는 빛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밝기를 뽐낼 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빛이다. 작가는 남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로 말하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억하며 이 작업을 제작했다. 제목은 원래 한국어로 ‘눈 가리고 아웅’이었는데,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어느새 냉소적 효과가 배가됐다. 그리 화려하게 말씀하셔도 저희 눈에는 엉덩이가 다 보입니다.
Can’t take my eyes off you는 비디오 모자이크를 구성 요소로 포함하는데, 이는 작가가 구글 검색 엔진을 참조해서 만든 프로그램으로 작동한다. 화면의 작은 조각들은 각각 인터넷에서 자동 수집된 이미지로,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 섬네일 크기로 축소되어 있다. 눈을 찌푸리고 살펴보지 않으면 뭔지 잘 안 보인다. 조각들이 모여 화면 전체에 나타난 이미지는 어디서 본 인물인 것 같은데, 역시 식별이 잘되지 않는다. 이 작업은 미디어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담는다. 오늘날 인터넷 등의 미디어 기술은 급속히 발달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사람들 간의 거리를 훨씬 가깝게 해 줬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정보와 ‘인연’의 양이 폭증함에 따라, 우리는 큰 그림을 봐도 작은 그림을 봐도 정확하고 의미 있는 지식을 얻기 힘들어졌다. 다른 한편, 인터넷 세계의 문을 여는 포털이나 검색 엔진은 중립적 매체가 아니며, 전통적 언론 매체와 다름없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편향적이다. 게다가 이들이 좌우하는 인터넷 사용 정책은 너무 미시적이고 장황해서 그 변화를 감지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도대체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3.
지하로 내려가다 보면 계단 옆으로 LED 조명이 들어오는 유리가 보인다. 이 작업은 제목이 Our daily bread로 같은 글자가 유리판 위에 적혀 있고, 다시 그 위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가 겹쳐 쓰여 있다. 일용할 양식은 사소해 보여도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디테일에 있는 악마는 반대로 미시적 차원에 존재하는 악영향을 뜻한다. 좋게든 나쁘게든 미세한, 친밀한 곳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
4.
지하 전시장에 진입하면 길쭉한 LED 조명으로 제작된 “FRIENDSHIP IS UNIVERSAL”이라는 글이 벽에서 벽으로 펼쳐진다. 하얗고 크게 빛나는 이 작업이 관객을 맞아 온몸으로 적는 문장을 무심히 지나칠 순 없다. 어찌 되었든 우정은 좋은 뜻으로 꺼낸 말이 아니겠는가? ‘보편적(universal)’이라는 말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 다른 개인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하나의 집단을 결속하기 위해 갈등을 없애고 화합을 도모한다. 수없이 많은 사적, 공동체적 이해관계를 넘어 세계를 하나로 묶을 공통의 가치를 제시한다. 우정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인적 없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처럼, Friendship is Universal은 찰칵찰칵 조용히 명멸을 반복한다.
5.
지하 전시장 한복판에는 카펫을 깔고, 두 개의 의자를 두고, 촬영 세트처럼 설치된 장소가 있다. 이 작업의 제 목은 Elephant in the living room이다. 우정이라는 주제 하에서 볼 때, 응접실은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손님을 맞기 위해 집 안에 마련된 이곳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정면으로 교차하는 장소다. 방앤리는 그들의 응접실을 마치 공개 토론의 현장처럼 연출했다. 토론은 서로 진지한 생각을 (심지어 대립각이 서는 데까지) 공유할 수 있고, 격한 언쟁이 끝나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는, 참으로 우정 어린 행위다. 이 작업은 또한 관객과의 상호 작용도 잊지 않는다. 카펫 위의 큰 의자는 모두에게 편안히 열려 있다. 여기에 앉은 관객의 모습은 카메라에 찍혀 가장자리의 작은 모니터에 나타나며, 그렇게 작업의 일부가 된다.
벽 위의 커다란 스크린에 나오는 모자이크 영상은 역사적인 토론 장면들을 재연한다. 예컨대, 그 가운데는 케네디 대 닉슨의 사상 최초 TV 토론의 한 장면도 있다 (사실 카펫 위의 두 의자는 당시 그들이 앉았던 것의 복제품이다). 두 후보는 마침 국제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데, 이때 미국과 다른 나라 간의 ‘우호 관계’가 강조된다. 또 다른 장면에는 푸코와 촘스키의 TV 대담(1971)이 있다. 여기서 두 지성은 인간 본성과 정의, 권력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들의 토론은 68혁명과 냉전을 둘러싼 시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노력을 상징한다. 영화 굿 윌 헌팅(1997)에서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이 친구를 주제로 대화하는 장면도 나온다. 책 속에서 말하는 죽은 친구들은 너의 부름에 답할 수 없다.
누구든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응접실도 코끼리를 손님으로 받지는 못한다. 반갑게 맞이하려 해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것이다. 우정, 토론, 응접실이 보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좀 필요하다. 비단 시대적, 세계적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좀 더 사소한 인간관계의 경우에도, 우정의 대가에 대해 모른 척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모른 척하고 코끼리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으면 곧 애꿎은 이것저것이 부서져 나갈 것이다.
6.
Hanging on your every word는 나란히 벽에 걸린 5개의 거울과 그 위에 펠트로 오려 붙인 문장으로 된 작업이다. 거울 위의 글자는 가독성이 높지 않아 읽으려면 오래 들여다봐야 한다. 각 문장은 작가들 스스로의 사연과 고뇌를 함축하기도 하지만, 또한 시처럼 추상화되어 있어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는 관객에게도 의미는 우러난다. 작가가 직접 쓴 것도 있고 인용구도 있다. 이들 문장을 하나씩 읽어 주면 감상에 방해가 될 테니, 이하에는 순서 없이 몇 줄만 골라서 옮긴다.
The only good friend is a dead one.
좋은 친구는 오직 죽은 친구뿐이다 (혹은, 좋은 친구들은 벌써 다들 죽어 버렸다).This is a ghost story. I paid you and you sold me.
이것은 괴담이다. 나는 네게 돈을 주었고, 너는 날 팔았지.Everything takes time. Bees have to move very fast to stay still.
모든 건 시간이 걸린다. 벌들은 (공중에)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몹시 빨리 움직여야 한다.The moon was done, before I was born.
달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끝장났다 (아폴로 11호는 이미 1969년에 달에 착륙했다).Only be, don’t pretend.
다만 그렇게 되어라, 그런 척만 하지 말고.In the end, we will remember not the words of our enemies, but the silence of our friends.
마지막에 가서, 우리는 적들이 했던 말이 아니라, 친구들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7.
지하 전시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는 Friendship is Universal과 정확히 같은 구조의 작업, Cul-de-Sac이 설치되어 있다. 이 “막다른 골목”은 우정의 “보편적”인 가치와 모순되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 처하면 우정은 배신감을 낳고 초라해지며, 그 힘으로 유지되던 집단의 평화는 위태롭게 된다. 그러나 모순이 있었다고 해서 우정이라는 가치를 손바닥 뒤집듯이 폐기 처분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누군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양이 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황야로 쫓겨나던 염소처럼, 자신의 속죄를 통해 다른 모두의 우정을 정화한다. 그는 죽어서 책 속에 자리 잡은 친구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전시장의 막다른 골목 앞에는 염소 Harry가 있다. 죽어서 박제된 이 검은 염소는 “죄(Sin)”를 해리 후디니의 사슬처럼 온몸에 감고 있다. 여기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다시 1층으로 올라와 출구로 나가는 길에 후디니의 모습이 한 번 더 눈에 들어온다. 그는 1926년 어느 쇼에서 부상을 입은 뒤, 굴하지 않고 다음 공연을 강행하다가 상처가 악화되어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순간 밝혀진 탈출의 진수는 죽음을 불사하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