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액티비즘, 여전히 ‘투명한’ 기술 사회
Articles and Reviews, Exhibition Materials
2021. 12. 12
고윤정 (독립기획자, 이미단체 대표)
아무것도 없는 사막, 누구도 보이지 않는 그곳의 낯선 주택과 창고, 황야를 휩쓰는 것 같은 스산한 바람 소리…
전시장을 들어서면 영화 매드맥스에나 나올 법한, 인류가 멸망한 모습 이후의 세계처럼 낡고 거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2020년 초반 ‘코로나’라는 팬데믹 위기가 시작된 이후 어느덧 2년 가까이 되었고, 그 동안의 라이프스타일이 계속 변화하여 온 시점에서 이 영상을 접한다면 지난 위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마치 게임의 한 장면처럼 다 쓰러져가는 폐허와 창고를 둘러싼 1인칭 시점은 곧 큰일이 날 것 같은 긴장감을 안겨준다. 본래 3인칭 시점의 숄더뷰로 제작된 방앤리(방자영&이윤준) 듀오의 〈Trackback〉(2021)은 주인공을 투명인간화하여 화면에서 제거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1인칭 시점을 따라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3인칭 시점의 카메라 액션으로 따라가는 영상이다. 가상현실의 1인칭 시점의 느낌과 3인칭 전지적 시점을 넘나들면서 교묘하게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이 섞여, 관객이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어떤 일을 함께 겪어낼 것 같은 현상을 드러내어 작가와 관객은 동시에 미묘한 공동체성을 갖는다.
방앤리의 과거 작업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거친 사막의 이미지가 가득한 작품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방앤리는 국내에서 일찍부터 미디어 아트를 접한 작가 중 하나로, 화려한 네온 사인과 눈부신 LED, 반짝이는 조명을 구성하는 오브제들, 작품들을 연결하는 늘어진 전기선, 빛을 투과하는 그림자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강렬한 작업들을 주로 해왔다.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그들의 작품에는 ‘해리’라고 불리는 염소가 등장했고, 거실에는 ‘코끼리’가 있으며, ‘우정’과도 같은 가슴 뭉클한 단어들, 혹은 미디어 사회를 비판하는 예리한 문구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지난 작업들 중에서 신작 〈Trackback〉(2021)과 연결 지어 몇 가지의 특징을 짚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작가가 작업을 만들거나 설치하는 과정에서 덧입혀진 레이어를 하나씩 탐색하다 보면 기술의 역사와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어느 순간 작품의 한 단면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방앤리는 그 과정을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여기에는 기술의 속성이 현실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 예술의 사회적 역할로서의 투명성과 작품이 물리적으로도 빛이 투과되는 속성을 띄었다는 점, 미디어 사회의 문제가 너무나도 ‘투명’하게’ 지금의 우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다.
방앤리는 미디어 시티 서울에 참여한 〈FAQ〉, 〈Lost in Translation〉, 〈Revision History X〉(2012) 연작에서 구글이 가진 미디어 권력, 오픈 소스의 허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구글 메일의 유료화 이외에도 기술 기반의 사회가 평등할 것이라는 예측과 다르게 기술은 접근 가능성의 측면에서 우리를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픈소스가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고서는 이해와 사용이 어렵고, 기계를 마음껏 다룰 만큼 자본이 풍부하지 않다면 신규 컨텐츠나 기술 사회에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경우 프리미엄 서비스료를 내면 광고를 보지 않고 바로 동영상을 볼 수 있고, 카카오 택시 어플리케이션이 없이 택시를 잡는 일은 어려워졌다. 아파트 거실의 월 패드가 해킹당하여 사생활이 온라인으로 유출되는 것과 같이 이미지의 공유 과정을 비롯하여 개인이 거대 미디어의 그룹 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방앤리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겪게 되는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를 ‘기술’을 사용하여 예술가로서의 발언을 하는 것이다.
〈FAQ〉가 구글로직(Googlelogic)을 구조적으로 드러내면서 구글이 제공하는 모자이크 이미지의 속성을 현재 웹검색의 방식에서 드러나는 데이터의 변형, 배포, 확산 등을 이용하여 두 개의 모니터를 통해 드러냈다면 〈Lost in Translation〉은 언어가 번역될 때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상실되는 상황을 통해 현재 미디어가 변화하면서 따라 오는 의미의 축소, 왜곡, 확대, 오해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 작업 역시 구글의 번역 기능을 기반으로 시스템이 가진 오류를 그대로 드러낸다. 덧붙여 〈Revision History X〉에서는 기술이 역사를 새롭게 쓰는 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웹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정보와 게재된 자료는 그것의 진실성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새롭게 쓰이고 수정되는 데, 그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도 기술이며 역으로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것도 기술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두 번째로 작업에서 보이는 특성은 총체적 연극성(Total Theater)이다. 〈Arena Tour – Machine〉(2016)에서는 서재, TV, 모니터, 소파, 염소 ‘해리’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원형 극장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 극장의 형식은 관객의 신체가 작품에 개입하면서 작품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관객이 작품 속에 침투하여 개별적인 요소로 작동하게 한다. 작품 속에 동물 농장이 있고, 거실 안에 코끼리가 있듯이 관객도 집 안에 있는 사소한 일상의 파편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TV와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작품의 ‘투명성’을 방해하지 않고 끝까지 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 지점에서 TV와 모니터는 작품을 보여주는 매체로서도 작동하지만,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거대한 미디어 시스템의 하나로서도 의미를 가진다. 전시장의 멋진 의자를 함께 설치하는 이유도 집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중요한 현대 사회인들에게 자연스러운 토론과 참여를 유도하고, 미디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동시에 지적하기 위함이다.
신작 〈Trackback〉(2021)은 그간의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 세계와 연결성을 가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방앤리의 작업 세계가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3채널로 제작된 작품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황폐한 땅 한가운데의 주유소, 창고, 낡은 집을 3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동안 거실에서 만날 수 있었던 ‘해리’는 집 밖에 있어 관객과 함께 버려진 집을 바라보기만 하는데, 집이 가진 안락함과 평온함은 더 이상 장면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미디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우리가 몰랐든 혹은 외면했든 미지의 세계로 관객과 예술가, 사회가 하나가 되어 진입 중이라는 것을 알린다. 관객은 가상의 표면과도 같은 폐허의 촉감을 눈으로 경험하면서 과거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 과정은 비물질적인 기억을 넘어 실재하는 현실로 전환된다. 공간을 체험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역순으로 되돌려 투영된 과거의 기억들은 관객의 눈앞에 마주한 단면이 ‘현재’임을 깨닫게 한다.
3개의 에피소드는 〈A rental car is running〉, 〈Trackback〉, 〈The place that has no name〉으로 나뉜다. 시, 에세이, 드로잉, 페인팅, 사진, 3D 모델링, 시뮬레이션 이미지 그리고 오브제, 조각, 모형 등의 여러 가지 미디어를 오고가며 제작된 영상은 관객/방문자가 3차원의 현실에서 공간을 탐색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전시장에는 없지만 이 작품의 건축을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에는 여러 가지 패턴과 텍스처를 미리 실험한 과정이 있다. 방앤리는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건축모형에 가까운 오브제를 오랜 기간 실험하여, 현실적인 공간과 유사한 3차원의 세계를 영상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여러 형태의 건물 모형을 질감과 표면이 주는 느낌과 함께 테스트함으로써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입체감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였고,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표면의 느낌이 궁극적으로 촉감의 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
“인류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가 몸은 떨어져 있지만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작가노트에서처럼 이 작품은 반복되는 순환적 구조를 갖추며 누구나에게나 있을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방앤리가 오랜 시간 고민해 왔던 미지의 땅과 미개척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시리즈는 미디어 아트 예술가로서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고 예술에 접목해야 하는 어려움과 지금 팬데믹 위기 속에 처해 있는 예술계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인터랙티브 라이트 아트 설치 방식등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방앤리의 과거의 작업과 달리 이 작품이 영상으로만 존재하게 된 이유는 오랜 기간 제조업의 몰락에서 파생된 위기의 상황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생존을 넘어 방앤리는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실천에 주목하고 바꾸어나가야 하는 부분을 탐색한다. 전시가 끝나고 난 후 남겨진 부산물, 대형폐기물, 재활용과 재사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들은 굉장하다. 미디어 사회에 대한 실천적인 작업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현상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팬데믹 위기가 오면서 그들의 고민과 실천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2021년 여름 무렵의 전시에서는 탄소중립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최근 미술계에서는 메타버스를 비롯하여 NFT를 위한 여러 가지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고, 예술가와 기획자는 온라인 채널을 위한 소통뿐 아니라 그리고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과정의 소통도 온라인으로 병행한다. 덧붙여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거나 전시장의 오브제를 통한 물리적, 현상학적 체험보다는 영상으로의 몰입의 경험이 확장되고 있다. 방앤리는 약 10년 전에 이미 구글이 작동하는 배경과 정책을 작품에 반영하였듯,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하는 내용을 실천하면서 작품을 제작하여 가는 과정에서도 동시대의 기술을 사용하여 작동하도록 한다. 〈Trackback〉(2021)의 경우 3D 프린팅, 3D 애니메이션, 카메라 트래킹 등의 기술을 사용하였다.
설치를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작가는 아마도 전시 기간이 아닐 때는 오브제를 구성했던 작은 모듈을 모두 분해하여 작가의 작업실에 분류할 것이다. 전기선, 모니터와 작품을 잇는 각종 연결선, 빔프로젝터, 스피커를 비롯하여 반짝이는 각종 입방체들은 이동과 이주, 분해, 해체, 조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가의 공간을 철저히 물리적이고도 현실적으로 차지한다. 최근 들어 기후 행동의 이슈와도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방앤리의 행보는 제주도에서 지구온난화,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Trackback〉(2021)을 보면서 대형 설치 작업을 줄이고 작은 부속품과 눈에 보이는 전기선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이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이 되었는지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투명성’은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변해도 여전히 그들의 작품에서 미디어 액티비즘의 중심개념으로 작동한다.
새로운 영역(Teritorry)을 개척하고, 확장하면서, 예술가와 작품들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 – 장거리 비행, 운송, 부산물의 문제들 – 을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참고]
방앤리 작가노트
신보슬, 「해리, 예술가 되기(becoming artst)를 연습하다.」, 『Brilliant Critics』, 코리아투머로우, 2017
미팅룸, 「재난 이후의 미술, 공유에서 공존으로」,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